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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횡령의 추억


[사진=조은수 기자]
[사진=조은수 기자]

[아이뉴스24 김동호 기자]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

2003년 국내에 개봉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많은 명대사와 명장면을 남기며 당시 510만명의 관객을 동원, 영화사에 큰 흥행 기록을 세웠다. 1986년에서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에서 벌어졌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살인의 추억'은 대한민국 강력범죄 역사상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을 소재로 다뤄, 영화적인 흥행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영화가 개봉되고 17년 가량이 지난 2019년 9월, 당시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이춘재가 이 사건의 용의자로 특정되고 이후 이씨의 범행 자백이 더해지면서 2020년 7월 2일 경찰은 이씨를 14건의 살인과 9건의 강간 사건의 범인으로 발표하며 재수사를 종결했다.

비록 긴 시간이 흘렀지만 결국 범인은 체포되고 의혹들은 모두 해소됐다. 하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상처는 결코 되돌릴 수 없었다. 있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22년에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시총 2조원 규모의 상장사에서 2천200억대의 횡령 사고가 발생하고, 시중 4대 은행 중 한 곳에서 600억원이 넘는 돈을 직원이 빼돌리는 일이 일어났다. 엄청난 규모의 횡령금액에 놀라움을 넘어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귀를 의심케 했다. 2천200억원은 국내 상장사 중 사상 최고 횡령금액이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횡령은 어제, 혹은 오늘 일어난 일이 아니다. 적게는 수년, 길게는 10년여에 걸쳐 수 차례 횡령이 있었다.

우리은행에서 600억원 넘는 돈을 횡령한 직원 A씨는 2012년부터 은행 돈을 빼돌렸다. 현재까지 경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A씨는 2012년과 2015년, 2018년 등 총 3차례에 걸쳐 은행 돈을 자신의 계좌로 빼돌렸다. 무려 10년 간 A씨의 횡령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는 이야기다. 오스템임플란트 역시 지난 2020년 최초의 횡령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들의 횡령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2월에도 상장사인 계양전기가 245억원 규모의 직원 횡령 사실을 공시를 통해 밝혔다. 한국거래소는 즉시 계양전기의 주권(주식)매매를 중단시켰다. 올해 초 직원 횡령 사실을 공시한 오스템임플란트 역시 지난 달 말까지 거래가 중단된 상태였다.

거래소는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 주식거래를 중단시킨다고 하지만 단순 거래중단으로 주주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거래소는 횡령사고 발생을 막기 위해 시장 감시를 강화하고 상장적격성 심사 등을 통해 상장사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경종을 울려야 한다.

금융감독원 역시 마찬가지다. 금감원은 상장사의 투명한 회계처리 등을 감시하고 제도를 개선토록 하는 것은 물론, 일부 회계법인의 부실한 회계감사 등에 대한 제재와 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2021년까지 최근 3년 간 발생한 국내 기업의 횡령·배임 사건은 227건이다. 이에 따른 기업과 주주들의 피해를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국내 증시 저평가의 요인으로 늘상 언급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이면엔 이런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좌충우돌하던 지역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이 주식 투자를 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여기가 횡령의 왕국이냐!"

/김동호 기자(istock7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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