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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소는 누가 키웠나


소액주주 권리 침해하는 쪼개기 상장, 해법 고민해야

데스크칼럼 [사진=조은수 기자]
데스크칼럼 [사진=조은수 기자]

[아이뉴스24 김동호 기자] "소는 누가 키울꺼야, 소는!"

지금은 사라진 개그콘서트에 출연했던 한 개그맨의 유행어가 요즘 다시 유행이다. 개그콘서트 폐지 후 한동안 안보였던 그는 최근 티비엔(tvN)의 개그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소를 누가 키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소를 키워 시장에 내다 팔기까진 적어도 2~3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 동안 소를 키우는 사람은 매일 소에게 여물을 먹이고 잘 돌봐줘야만 한다. 만약 소가 배를 곯아 잘 크지 않거나 병에 걸려 죽는 등의 일을 방지해야한다. 그렇기에 소를 키운 사람이 소를 판 대가를 가져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소를 키우는 동안 돈(자금)을 댄 사람이 따로 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소에게 먹일 여물을 사고, 축사도 짓고, 소를 키우려면 많은 돈이 들어간다. 만약 그렇다면 소를 판 돈은 소를 키운 사람과 그간 돈을 댄 사람이 적당한 비율로 나눠 가져야만 한다.

소를 키운 사람이 소를 판 돈을 혼자 독식한다면 어떨까? 그간 돈을 댄 사람이라면 분명 그를 비난하고 그동안의 투자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게 세상의 상식이다.

그런데 국내 주식시장에선 그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다. 국내 상장사들은 잘 키운 소를 혼자 독식하기 위해 물적분할 후 증시 상장이란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쪼개기 상장'이다. 물론 물적분할 이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기존 소액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다만 이를 규제할 법이 없을 뿐이다.

올해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 이슈메이커였던 LG에너지솔루션도 잘 키운 소 중 한마리였다. LG화학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던 2차전지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 올해 초 증시에 상장했다. 이 과정에서 LG화학은 구주매출을 통해 2조5천억 규모의 현금을 조달했다.

반면 2차전지 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했던 수많은 LG화학 소액주주들에게 돌아온 것은 핵심사업 유출에 따른 기업가치 하락이었다. 작년 1월 최고 105만원에 육박했던 LG화학 주가는 1년 만에 60만원대로 추락했다. LG화학의 현재 시가총액은 46조원 규모로, 작년 최고가 대비로는 40% 가량 쪼그라든 상태다.

LG화학은 성난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친환경 소재, 전지(배터리) 소재, 글로벌 신약을 주축으로 한 성장 청사진과 함께 주당 1만2천원의 현금배당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차세대 성장동력도 어느 순간엔 물적분할을 통해 다시 떨어져 나가지 않을거란 보장은 없다. 뿐만 아니라 1년 사이 40만 가량 주가 하락을 겪은 주주들에게 주당 1만2천원의 배당을 '새 발의 피'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가치는 무려 111조원을 넘어섰다. IPO를 통해 증시에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의 최대주주는 LG화학으로, 총 82% 가량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상장 당일엔 공모가인 30만원의 2배 수준까지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면서 개미(개인투자자)를 위한 전국민 재난지원금이란 우스갯 소리마저 나왔다. 하지만 그 돈은 LG화학 주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셈이나 마찬가지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처럼 물적분할을 통해 증시에 상장할 경우, 기존 LG화학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제로(0)나 마찬가지다. 물적분할 후 비상장을 유지한다면 해당 기업의 가치는 상장사인 모회사의 가치에 포함되지만, 자회사가 별도로 상장한다면 따로 평가받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굳이 LG화학이 아닌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사면 된다는 소리다.

실제로 자본시장이 우리보다 크게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미국이나 영국 등 소위 선진국의 경우엔 LG에너지솔루션과 같은 쪼개기 상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미국에서 이런 행태를 보였다면 LG화학 이사진은 성난 주주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하고 주주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한데 따른 천문학적인 규모의 배상금을 물어야만 했을 것이다.

지금도 상당수 기업이 물적분할을 결정했거나, 추진 중에 있다. 포스코는 지난 달 임시주총을 통해 물적분할을 결정, 투자형 지주회사와 사업 자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포스코는 이 과정에서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사업 자회사의 별도 상장을 없을 것이라 약속했다. 카카오와 CJ ENM 등도 최근 커진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를 감안, 올해 추진하려던 일부 사업 부문의 물적분할 계획을 철회했다.

하지만 쪼개기 상장을 막기 위한 명확한 법과 규정이 없는 이상, 같은 문제가 반복될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 남은 지금, 각 당의 대선후보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금융당국도 개선방안을 살펴보겠다고 나섰다. 잃어버린 소액주주들의 신뢰를 다시 찾고, 기업과 주주가 동반성장할 수 있는 건전한 투자문화 정착을 위한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동호 기자(istock7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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